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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클] 비 내리는 여름 밤, 동굴 속에서 +a

*2014.7.16

*네티 한줄이야기에서 아무 생각없이 '저 섹시파멸돋는 란클이 쓰고싶어요!' 했더니 다들 '연성해주세요!'를 외치시길래 덜덜 떨며 쪄온 글입니다

*왠지 제목 끝에 .avi 같은게 붙어야만 할 것 같지만 놀랍게도 이 글은 전체연령가 입니다!

*란지클로 (+약간의 막시란지..?)





여름밤이 차디 찼다. 그러나 빛은 밝아 사방 천지가 훤했으니 그건 달빛 때문이 아니라 횃불 때문이었다. 란지에는 무리에서 떨어져 순찰을 돌다가 푸르럭거리는 말을 내버려두고 홀로 산을 올랐다. 그의 옷은 왕국 8군이 입을 법한 군복이었다.

사달의 원인은 이러했다. 몇년 전 켈티카를 거점으로 어마어마하게 불어난 아르님 세력은 기어코 체첼 국왕을 배신하고 아노마라드 북쪽에 아르님 공국을 세웠다. 이에 재빨리 정치적 이득을 계산해 본 민중의 벗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노마라드 남부에 본격적으로 민중의 깃발을 꽂았다. 바야흐로 대륙은 격변기였다.

분명 초기에는 아르님 공국과 아노마라드 구 왕정, 민중의 벗이 세운 공화정이 서로 비슷비슷한 힘을 겨루며 삼자가 공존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은해골의 비호를 얻은 자가 아르님 공국에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정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아르님 공국은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커졌고, 급기야 렘므 왕국도 젊은 공국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세력을 키워야 하는 시기에 불필요한 싸움을 원치 않았던 아르님 공국은 렘므 왕국에 격식을 갖춰 화친을 청했다. 하지만 본래 호전적인 기풍이 강했던 것인지, 아니면 공국의 힘이 아직 약할 때 밟아둬야겠다고 생각한 것인지-란지에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두었다- 렘므 왕국은 그 요청을 묵살했다. 그리고 일년 후 전쟁이 터졌다.

아르님 공국이 렘므 왕국과의 전쟁에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아노마라드 구 왕정과 민중의 벗 공화정 간에 동맹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이들 동맹은 은밀히 렘므 왕국쪽에 밀사를 보내 지원의 의사를 내비쳤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연합군이 결성되었고, 어마어마한 지원군을 얻은 렘므 왕국은 아르님 공국을 켈티카 안에 가둬버렸다. 전쟁은 그렇게 일단락 되는 듯 했다.

그러나 달포 후, 연합 동맹은 급신을 전달받았다. 켈티카 공략 전투에서 동맹군이 대패했다는 내용이었다. 즉각 나이트워크를 이용해 조사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르님 소공작이었다.

켈티카를 지키기 위해 소공작은 마법-사실은 강령술이었다-을 사용했고, 동맹군을 흔적도 없이 쓸어버렸다. 연합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마법엔 마법으로밖에 대응할 수 없다. 급하게 온 대륙을 뒤져 몇 없는 마법사들을 찾아냈으나, 이놈의 마법사들은 도통 성질이 괴팍하여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지원을 원한다고? 그렇다면 저 감자껍질을 다 벗겨라!' 도움을 청하러 갔던 나이트워커와 왕궁 시종관은 한달 만에 어느 넓은 들판 한 가운데에서 발견되었는데, 꼭 한달을 굶은 것마냥 뱃가죽과 등가죽이 들러붙은 상태였다.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야 했다. 그들은 내부에서 마법을 배운 자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교롭게도 각 진영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이 발탁되었다. 이들은 각각 국왕과 제 아버지의 말, 공화정 수뇌부와 스승의 말을 듣고 출전했다. 곧 전선은 회복되었고, 렘므 왕국은 본래의 국경선으로 되돌아갔다. 전쟁이 길어지자 왕국은 공국에 휴전을 요청했다. 공국은 흔쾌히 받아들였고, 협정이 체결되었다.

체결된 협정에 따라 연합군은 전선에서 철수해야 했다. 하지만 아르님 공국은 이미 아노마라드의 두 정치세력이 이 일에 가담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렘므 왕국의 군사들이 전선에서 빠지기가 무섭게, 공국은 연합군을 공격했다. 기습이라 대비할 여유가 없었던 것은 물론,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었기에 연합군은 공국 군대에게 거의 살육당했다. 이 전투 때문에 연합군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더불어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출전했던 폰티나 공녀가 사라졌다. 

구 왕정군은 곧장 공녀를 찾기 위해 남아있던 모든 횃불을 밝혔다. 공국군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이미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란지에는 이 자리에서 즉각 동맹을 파기하고 공녀를 버려둔 채 아노마라드로 돌아갈까 고민했다. 하지만 아르님 공국의 세력이 아직 강대한 이 시점에선 동맹을 유지하는게 공화정에 더 유익하단 판단을 내리고, 공화정 군대에게 연합군으로서의 의리를 다할 것을 명했다. 

다행히 공국 군은 다시 기습해오지 않았다. 방금 시작된 악천후 때문에 병사들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한 모양이었다. 란지에도 비에 쫄딱 젖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날씨조차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빗속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르님 공국과, 공국의 후계자인 소공작과, 공국에 있다던 '은해골의 비호를 받은 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모두가 있을 법한 켈티카를 생각해보았다. 늘 그렇듯, 아무 감정은 없다. '은해골의 비호를 받은 자'가 조금 거슬릴 뿐.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왼손을 사정없이 때렸다. 몸에 부딪히는 빗방울은 상관이 없었지만 왼손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란지에는 손을 품에 넣어 보호하며 산 속을 헤집었다. 진창을 철벅철벅 걷다가 군화가 다 젖어버렸다. 바짓단이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염색한 머리에서 색이 빠지고 있었다. 란지에는 잠시 고민하다가 쉬어가기로 했다. 마침 저 너머에 쉬어갈 수 있을만한 동굴이 보였다. 그는 주저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놀랐다.

"......"

초록색의 화려한 원단에 하얀 레이스가 덧입혀진 여성용 자켓이 보였다. 그 아래로 응당 있어야 할 승마용 바지 각반이 절반이나 찢겨나가 있던 건 차라리 참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다리에 어마어마한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 피를 지혈했을 것이 분명한 정체불명의 붕대들이 다리 전체에 감겨있고, 탐스러운 금발엔 온갖 진흙이며 풀이며 피가 묻어 있었다는 것은 제외하고. 하지만 지금 그가 그토록 찾던 공녀 옆에 멍하니 앉아있던 사람은 그가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막시민 리프크네?"

"제기랄."

그 옛날 네냐플에 다닐 적 같은 빌라를 썼던 룸메이트. 그 때 가끔 걸쳤던 우스꽝스러운 로브는 이제 없었고, 대신 때깔이 좋아 그와 어울리지 않는 공국군 군복을 입고 있었다. 막시민은 빗방울이 잔뜩 묻은 안경을 더러운 군복에 문질러 닦았다. 란지에는 그답지 않게 벙쪄있는 상태였다. 그러고보니 이 자를 깜박 잊고 있었다.

"조군놈이 먼저 올까 네놈이 먼저 올까 점 쳐보긴 했다만...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먼저 나가야겠네."

"...무슨 소리지?"

"뭐긴 뭐야, 내가 저 여자를 살려줬으니 넌 날 살려줘야 한다 이 말이지."

막시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도 큰 부상을 입은 듯 다리에 피딱지가 잔뜩 응어리져 있었다. 그는 물 묻은 머리를 마구 털더니 정말 가려는 듯 동굴 입구로 절뚝거리는 걸음을 뗐다. 

"혹시나 오해할까봐 하는 말인데, 난 저 여자 건드리지도 않았다. 다 죽어가던거 살려놨더니 느닷없이 목에 칼침을 놔, 진짜 죽을 뻔했네. 너도 저 여자 데려가려면 칼 조심해라. 내가 하나 피해서 저 바깥에 던져두긴 했다만, 몸 속에 몇 개 더 숨겨뒀을지도 몰라. 보아하니 지금은 정신이 까딱까딱해서 그럴 일은 없겠다만."

"...소공작은?"

막시민이 고개를 돌려 란지에를 쳐다보았다. 눈빛이 꼭 이건 무슨 개소리지, 하는 눈빛이었다. 란지에는 질문을 바꿨다. 

"보리스는?"

"...몰라."

"......"

란지에는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 표정에 막시민이 한 번 씁쓸하게 웃었다.

"졸업하고 연락 한 통 없던 녀석들이 무슨... 만나봤자 서로 좋을 것도 없으니 앞으로도 계속 만나지 말자고. 됐지? 난 간다."

그리고 막시민은 정말 떠났다. 란지에는 바로 클로에의 상태부터 살폈다. 비에 젖어 축축 늘어져있는 옷들, 창백한 안색에 시퍼런 입술, 차디차게 식은 몸과 이젠 조금씩 경련을 일으키려는 팔을 보았다. 란지에는 막시민이 매준 것 같은 정체불명의 붕대를 다시 꽉 동여매고는 주저없이 클로에를 안아들었다. 

비 때문에 피부에 착 늘러붙은 옷이라 안아들기는 쉬웠다. 몸에서 몸으로 곡선이 감겨왔다. 하지만 평소 입던, 장식이 치렁치렁한 보통 귀족들의 옷이 아니어서 왠지 어색했다. 란지에가 봤던 클로에의 모습은 주로 연회장에서 부채로 입을 가리고 주변 여귀족들과 소담을 나누는 공녀로서의 모습이나, 그것도 아니면 보리스가 우승했던 실버스컬 대회에서 공작 옆에 앉아 뭇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잠 못 이루게 했던 인형같은 미모를 발하는 모습, 그도 아니면 이엔과 함께 갔던 아르님의 파티에서 저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정치가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패배하여 목숨이 경각에 놓여 있는 폰티나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분명 그것이 이상하고도 생소하여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살에 와닿는 감각은 아니다. 분명 차디찬 몸인데 여린 온기가 서려 있었다. 분명 상처 입어 피를 뚝뚝 흘리는 모습인데 앙다문 입술엔 의지가 서려 있었다. 여리나 강하고, 강하나 여리다. 란지에는 클로에를 안고 걸으며 공녀를 '읽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읽으려 했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모습들, 그녀가 보여주려 했던 모습들, 또 그녀가 감추려 했던 모습들까지 전부 읽어내려 했다. 그녀의 하얀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기회를 노려, 혹은 감히.

감히? 란지에는 그런 단어를 떠올린 자신에게 놀랐다. 왜 그런 말이 생각난 것인가. 란지에는 공화정의 대표로 아노마라드 구 왕정과는 결론적으로 적이었다. 지금은 비록 임시적 동맹 상태이긴 하지만. 적국의 공녀에게 공화정 대표로서 예의를 차릴 뿐, 더 이상 왕국에 속해있지 않은 그가 공녀를 상위의 개념에 둘 필요는 없었다. 공화정이 왕정에서 갈라진 이상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서로에겐 비현실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그는 공녀에게 정치적인 예의를 차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공녀를 구하고자 한 것은 이러한 예의의 연장선이었다.

곧 란지에는 말을 버려두었던 장소로 다시 돌아왔다. 다행히 순한 말은 제 자리에서 푸르럭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체없이 공녀를 말 위에 태우려 했다. 그러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공녀가 심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

다급해진 란지에는 일단 클로에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녀를 만져보고, 체온이 너무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비도 그치고 출혈도 얼추 멎었건만 약해진 몸이 한기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란지에는 즉각 입고 있던 군복 자켓을 벗었다. 체온을 올려주어 의식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다. 그 후에 말에 태우더라도 태울 수 있었다.

란지에는 제 군복으로 클로에를 둘둘 말아놓고, 맨살이 드러난 발을 마사지해 주었다. 그녀가 촉각으로 의식을 되찾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발과 다리를 차례로 주물렀는데도 반응이 없자, 그는 위로 올라가 경련하는 그녀의 팔을 주물렀다. 감각을 주니 경련이 조금 멎는 듯 싶었는데 마사지를 멈추자 다시 파르르 떨렸다. 마사지 하는 와중에 틈틈이 이마의 열도 재보았다. 아직 체온이 돌아오려는 기색은 없었다.

한참을 그리 하다가, 문득 란지에는 물 속에 빠진 이를 구명하는 방법에 대해 적은 책이 생각났다. 물에 쫄딱 젖어있는 옷은 보온에 그리 큰 효과를 주지 못하므로 저체온증에 빠진 이를 구하기 위해선 사람의 체온이 가장 좋다는 것이었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란지에는 입고 있던 군복을 하나씩 벗었다. 저가 다 벗고 난 이후엔 클로에의 젖은 옷도 없애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음 날 두 사람은 무사히 연합군 진영에 도착했다. 왠지 클로에는 엄청나게 화를 내고 있었고, 란지에는 왼쪽 뺨에 커다란 손 자국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두 사람의 상태는 비교적 멀쩡했다. 








뱀발1. 막시민이 클로에를 살린 이유는 사람 죽이는 걸 못해서! 입니닷... 그 뭐냐, 데모닉에 이런 내용 있지 않았나요 일마가 깔깔 웃으면서 오빠가 어떻게 닭을 잡아? 이리 줘 내가 할게 이랬던 거 같은데... 거기에 착안해서 써봤습니다

뱀발2. 보리스가 아르님 공국에 있다는 소문은 사실 거짓말입니다. 보리스는 루시안이랑 칼츠 저택에 잘 짱박혀 있어요. 조슈아가 퍼뜨린 소문입니다. 간사한 데모닉!

뱀발3.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_-*

뱀발4. http://blog.naver.com/wjdghk1120/220065723294 이 글을 보신 안타레스님께서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모두 존잘님의 연성을 보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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