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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글(사약)/ 예프넨&에피비오노

*룬텔온때 트레카 매진으로 트레카를 1도 사지 못한 불쌍한 중생에게 무료 나눔을 해주신!!!! 트위터의 천사 THE님께 드린 쪽글입니다 

*예프넨&에피비오노



홀로 세상을 떠도는 일은 이상하다. 밝은 빛이 눈부셨다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가, 어떤 날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야에서 눈을 뜨기도 하고, 어떤 날은 넓은 목초지가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곳에서 눈을 뜨기도 했다. 더 남은 감정도, 사명도 없는 그는 자신이 왜 이렇게 떠돌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유령의 본능대로 에너지가 큰 곳으로 향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대륙의 불모지, 필멸의 땅이었다. 멍하니 사막을 건너는데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슴팍으로 해골 손이 불쑥 들어왔다.

"뭐야, 유령이 된지 얼마 안됐네?"

물리적 접촉을 당하지 않는 유령의 몸이었지만 그래도 무례하다 생각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표정을 약간 찌푸리며 뒤돌아보자 검은 망토를 푹 눌러쓴 사람인지 모를 남자 하나가 서있었다. 굳이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한 이유는 남자의 얼굴은 멀쩡했지만 손을 해골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낯선 사내에게 호기심을 가질 정도로 긍정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 알지 못하는 이유로 배회하고 있는데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 그가 공허한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보자 사내가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저 눈빛...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비슷한 사람이..."

혼잣말하는 것을 보니 더 이상 볼일이 없을 것 같아 무시하고 다시 뒤돌아섰다. 각자 갈 길 가자는 의사표현이었지만 아쉽게도 알아듣지 못한 듯 사내는 그의 옆으로 달라붙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거 내가 죽이지 않고 대화해 볼 마음이 생긴 방문자가 이로써 두 번째로군."

그 말에 그는 잠깐 멈추어 섰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없애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억의 저편에서 오래된 가르침 하나가 편린처럼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이었던가, 사람을 죽이는 기술을 연마할 때는 최소한의 자신감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였는지, 그 말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그 때 당시 그의 나이는 어느 정도였는지 등 자세한 사항들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가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사내가 무언가를 생각해냈는지 씨익 웃었다.

"어, 그래. 방금 그 말을 똑같이 했었지. 이 망토를 준 소년 말이야."

사내가 두르고 있는 망토는 검은 망토였다. 오래되고 낡아서 끝마디의 실밥이 풀리고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황야에서도 입고 사막을 헤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질기고 튼튼해보였다. 해골인지 사람 몸인지 모를 그의 몸을 가려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든든한 보호막. 그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보호막이 되어주고 싶었다. 누구에게?

"소년은 무사히 여행을 마친 후 잠시 평화를 누렸지. 지금은 봄과 함께 새로운 계절로 나아가고 있어. 가볼 텐가?"

뭔가 알고 있는 듯 웃고 있는 그의 미소는 신비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믿어도 되는 사람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딱히 거절하고 싶은 제안은 아니었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서 강렬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그리운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이것 참 미련 많은 유령이네. 사념은 없지만 미련이 많아. 그래서 진혼 직전의 상태로 떠도는구만? 그러지 말고 가서 동생 한 번 보고 오게. 잘해내고 있으니 가서 한 번 보면 자네도 미련을 거두고 곧 떠날 수 있을 거야."

동생이라는 말에 갑자기 모든 기억에 물밀 듯이 흘러 들어왔다. 추억이 담긴 니들그래스의 평야, 동생을 두고 아프게 떠나야 했던 초원, 긴 밤의 자장가... 그의 동생은 아직도 그를 기억할까. 사랑스러운 동생은 자신의 가능성으로 행복해졌을까. 유품을 간직하고 유언을 지켰을까. 

눈물이 차오르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기이한 해골 손의 사내를 다시 마주보았다. 사내는 신비하게 웃으며 해골 손을 들어 길에 깔린 박석을 가리켰다.

"수도로 가지. 거울에 들어가면 네냐-야플리아에 갈 수 있을 거야."

이때부터 아르카디아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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